번역2018. 11. 26. 00:09

 

 

2018.09 VOICE GANG

 

―올해 40세를 맞이하게 되는 후쿠야마씨. 40대라고 하면 불혹이라고도 하지요. 그래서 세대별로 공자의 말에 겹쳐, 후쿠야마씨의 인생을 쫓아가보려고 합니다. 우선, 소년 시절에는 어떤 소년이었나요?

어중간하게 경박하고, 어중간하게 눈에 띄고, 어중간하게 그룹의 구석에 있는, 울지도 않고 뛰어다니지도 않는 녀석이었죠 (웃음) 이것저것 하지만 딱히 잘 하는건 없고, 뭐든지 해내지만 1등은 아닌. 가장 각광받지 않는 타입이었어요.

 

―초등학교 시절에 가장 열중했던 것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어요. TV는 1일 1시간까지로 정해져있어서 그렇게 자주 보진 못했었어요. 부모님이 맞벌이셨다보니 어머니가 돌아올때까지 형과 결탁해서 놀고 있었죠. 부모님이 숨겨둔 패미콘 AC 아답터의 코드를 감는 방법부터 위치까지 외우고 있다가, 집에 돌아오는 어머니의 벨소리가 들리면 형에게 " 돌아왔다! " 라고 신호를 보내서, 문이 열리기 전에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놓는거죠 (웃음) 그 시간에는 게임을 한다거나, 녹화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보지는 못하니까 학교에서 그 얘기로 화제가 되면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아침에 방송하는 애니메이션이라던가, 부모님이 계시니까 볼 수 없었죠! 어머니가 뉴스를 보면서 여기저기 틀 때 몇 컷만 봤어요 (웃음)

 

―부지런하네요! (웃음)

그리고 " 그리운 애니메이션 특집 " 이라고 있잖아요. 당시엔 그게, 그렇게까지 오래된 게 아니었거든요. 그 방송을 보며 명장면만 알고 " 아~ 하이디네 " 라면서 본 척을 했죠. 실제로는 하이디, 클라라, 페터밖에 모르는데 단편적인 정보로 대화에 따라가고 있었네요.

 

―그럼 중학생때 몰두하고 있었던 건 뭐였나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여전히 좋아했고, 부활동에 힘쓰고 친구들과 터무니없이 노는 평범한 중학생이었습니다.

 

―후쿠야마씨의 중학교 시절에는 어떤 만화가 유행했나요?

초등학교 6학년때 슬램덩크가 시작해서 커다란 붐을 일으켰어요. 저도 예외가 아니어서 농구부에 들어갔었지만, 포지션이 정해지기 전에 그만두었어요. 1학년은 공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근육 트레이닝만 했거어요. 거기서 선배에게 화가 나서 (웃음) 저희들 시대의 선배는 심한 훈련과 따돌림을 혼동하고 있었어요. 그 트레이닝에서 따돌림에 실패하고 말도 안되는 소릴 들었는데, 그래도 공은 만지게 해주질 않았죠. 그래도 거기서 그만두면 도망치는거라고 생각해서 1년은 절대로 그만두지 않겠다고 결심했었거든요. 2학년이 되어서 공을 만질 수 있었고 포메이션 연습을 시작할때쯤 그만둔다음, 유도부에 들어갔습니다.

 

―평범하게는 2학년부터 그냥 즐기는게 아닌건가요!?

그건 그렇지만, 저는 인기있는 클럽이 활개치는 게 아무래도 싫었거든요. 마침 J리그 개막시기에 승리를 기원하는 팔찌를 하고 분위기를 띄우는 축구부, 거기에 대항하는 야구부, 그리고 제가 길을 가면서도 계속 인기가 있었던 농구부라는 부활동의 종파같은 것들이 성격에 맞질 않았어요. 그래서 폐부가 되어있다가 동급생이 부활시킨 유도부에 들어가서 즐겁게 유도에 힘쓰고 있었어요 (웃음)

 

―그 전까지 유도 능력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웃음) 하지만 즐거웠어요. 그 흐름으로 고등학교에서도 유도부에 들어갔어요. 다만 고등학교의 선배도 심한 짓을 하곤 했어요. 놀이 삼아 기절할때까지 조인다거나, 유연성 운동으로 쫙 펴고 있을 때 확 떨어뜨려서 명치가 아찔하게 만든다거나. 역시 열이 받았죠 (웃음) 당시에 신문 배달을 하고 있기도 해서, 몸도 힘들었다보니 적당한 시기였죠. 그후에 또 저희 세대에서 부활한 검도부에 들어갔지만, 도장에 갈 때마다 유도부의 선배가 " 배신자! " 라면서 집요하게 쫓아다니고, 목을 조르다가 떨어지고 했는데 그래도 그 선배랑은 사이는 좋았었어요 (웃음)

 

―검도부는 즐거우셨나요?

검도부에 들어가서 재차 느꼈던건 야구부와 축구부에선 우쭐거리는 녀석들이 많다는거였어요! 어떻게든 녀석들의 프라이드를 꺾어주겠다고 생각해서 미술부와 만화 연구부에 입부해서 겸임했죠. 메인 부활동을 만화 연구부로 하고, 문화제에서 만화나 일러스트를 그리면서 제 본방은 중거리 달리기의 시간 측정. 소속된 부를 포함해서 랭킹 형식으로 게시되는 거였거든요. " 이거야 " 하고 차근차근 문화제의 이미지를 그렸던 저는 3000M에서 체육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녀석의 상위가 되어 " 만화연구부 " 를 랭킹에 올리기 위해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11위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소속 클럽 란에 만화연구부는 실리지 않았어요. 저만 공란으로 표시가 되었죠. 아쉽게도 그 시도가 실패하고 졸업할때까지 태평하게 지냈습니다.

 

―논어에 " 열아홉이 되어 학문에 뜻을 두다" 라는 말이 있는데요. 고등학교 시절 후쿠야마씨가 좋아한 여자아이와 함께 양성소의 오디션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그 때가 몇 살이셨나요?

오디션을 받았을때는 16살이었죠. 같이 하자고 제안 받았던 건 15살이었어요.

 

―오오, 딱이네요! 덧붙여서 그 전에 성우라는 직업에 관심은?

많이 있긴 했지만, 실제로 하는거에 대해선 생각해본적도 없었습니다. 같이 하자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겠지요.

 

―양성소에 다녀보니 어떠셨나요?

엄청 재미있었어요. 원래 연상의 사람들과 얘기하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하고 있다는 것도. 양성소 자체가 저에게는 놀이터 같았어요.

 

―양성소의 학비는 어떻게?

신문배달 아르바이트 비용이었어요. 알바를 시작한 이유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중형 이륜 면허를 따서 자전거 라이프를 보내고 싶었거든요. 1년간 70만엔 저축했습니다. 제 이상(적 전개)은 양성소에 둘 다 떨어지고, 휴일에 자전거 라이프를 같이 지내거나 혹은 그녀만 붙어서 저는 떨어지고 그녀를 양성소에 자전거로 데려다주는(취득후 1년은 2인용 자전거 운행이 안된다는 걸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것도 되겠지 싶었죠. 그런데 설마 두 사람이 다 붙다니요 (웃음) 양성소 비용을 알아보니 저축해둔 알바 비용으로 어떻게 되서, 부모님께 부탁하지 않아도 할 수 있겠다 싶더라구요. 자전거는 사지 못했지만, 대신 양성소에 함께 다니게 되서 모든게 즐거웠어요.

 

―그리고, 데뷔가 18세.

네. 코믹ASUKA라는 만화 잡지 라디오 CM이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 그런데, 왜 여기에 있어? " 라는 대사였던건 기억하고 있어요.

 

―10대에 일을 할 수 있다니 대단한 일이네요?

하지만 그 뒤로 반년간 아무것도 없었죠 (웃음) 데뷔 1년간 일은 라디오CM 2개뿐이었어요. 급여는 원천징수되서 9500엔 (웃음) 당시의 추억이라하면 제가 도쿄에 갈 때 소꿉친구가 " 설마 타카츠키, 그것도 우리 동료중에 메이저리거가 나오다니. 도쿄에서 잘하고 와!" 라고 송별회까지 열어줬던 거예요. 1년후 친구에게 " 성우는 어때? " 라고 묻기에 " 일은 전혀 없고, 연봉은 9500엔이었어 " 라고 대답하니 " 메이저리거가 나온줄 알았는데, 인디펜던트(독립 리그) 였구나 " 라고. " 그러네, 빨리 마이너리그로 올라갈게" 라는 소릴 했었네요 (웃음)

 

 

―98년에 지켜줘 수호월천! 으로 애니메이션에 데뷔하셨어요.

연기했던 역할은 남성, 현관문, 칠판 지우개였습니다 (웃음) 제대로 된 역할을 처음 맡았던 건 요시모토 무칫코 이야기. 칸사이 출신이라, 런던부츠 1호 2호 (타무라) 아츠시씨가 모델이 된 런부아츠시를 맡았습니다. 아츠시씨는 칸사이 사투리가 아니지만, 캐릭터성으로 칸사이 사투리로 아츠시를 연기했었어요.

 

―99년에 연기한 애니메이션 작품은 턴에이 건담이네요.

키스 레제는 처음으로 오디션에 합격한 역입니다. 이게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겠죠. 오디션을 받은 건 주역인 로랑 셰아크였는데, 이 작품은 혼자서 하는 형식이 아니라 오디션 참가자가 얽혀서 녹음하는 형식의 오디션이었어요. 스튜디오안에 30명정도 있고 이름이 불리면 합에 맞게 연기했어요. 저는 사전에 받은 대본으로 연습해갔는데, 이게 걸리지 않는다면 찬스는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현장에서 받은 대본에는 본 적 없는 씬이 그려져있는거예요.

해프닝에 분위기가 압도되서 완전 단조로운 읽기가 되어버렸고 그걸로 끝. 스튜디오 로비에서 풀이 죽어 있었죠. 매니저가 얼른 돌아가자고 해도 " 이제 아무도 없으니까, 하고 싶은대로 하게 해줘요. " 라고 자포자기하고 있었죠 (웃음) 그런데 음향 담당이신 분이 오셔서 " 히로인 오디션이 2명 남아 있는데, 남성 성우분들이 모두 돌아가버렸거든요. 한번만 더 로랑 역 오디션을 받아보시지 않겠습니까? " 라고 하시는거예요. 이쪽에서는 " 기쁘게 받겠습니다! " 였죠 (웃음) 그것도 대본이, 미리 받았던 그 대본. 한번 죽은 목숨이니까, 더이상 두려울 건 없습니다. 마음껏 하고나서 결국 로랑은 떨어졌지만, 빵집의 키스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포기하면 거기서 끝인거구나, 라고 생각했네요.

 

―여기부터 순조롭게 출연작이 증가했는데요, 성우 일만으로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나요?

사실 99년에 아오니 프로덕션을 그만두고 한동안 프리로 활동했었어요. 당시엔 20살 프리라는 것도 없었고, 일도 있을리가 없었죠 (웃음) 그래도 그 시기에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와 GUNDAM THE RIDE에서 역을 맡았습니다. 물론 이 시기에는 성우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었죠

 

―그러면 아르바이트를 하셨다거나?

선상 레스토랑에서 상을 차리는 아르바이트를 했었어요. 아르바이트없이 먹고 살 수 있게 된 건 04년쯤이었을까요. 그때까지는 " 이번달은 붙었는데, 다음달에는... " 자잘하게 일을 이어가고 있는 느낌이었네요.

 

―그러고보니 04년부터, 메인 캐릭터를 연기할 일이 늘어갔군요. 그 안에서도 눈에 띄었던 것이 암굴왕의 주인공 알베르 드 모르세르 자작이네요.

그때까지는 " 후쿠야마는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 "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03년 SUBMARINE SUPER 99의 오키 스스무는 목소리를 만들지 않고 올곧은 소년을 연기했었죠. 한편으로 나루에의 세계의 마루오 마사키는 재미있는 친구 캐릭터. 모험유기 플러스터 월드의 비트마는 열혈 미남 캐릭터. 록맨에그제 시리즈의 서치맨은 군인이라 그때는 흔치않게 목소리를 낮춰서 흐느적한 느낌이었죠. 인상은 제각기 달랐었어요.

 

―당시엔 자신의 목소리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셨나요?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02년쯤부터부터는 일을 많이 시켜주셨지만 오디션은 계속 떨어졌거든요. 그러던중에 (맡은) 초중신 그라비온의 텐쿠지 토우가는 평소엔 의젓하고 천연보케인데, 전투중에는 진지해지는 전환이 필요한 역이었어요. 제 목소리에 특징이 없는 만큼, 하는 방법에 따라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는 일면을 이 작품에서 이끌어내 주셨습니다. 목소리에 특징이 없다는 점이 무기가 될지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걸 어쨌든 늘려보자고 생각했어요.

 

―후쿠야마씨는 낮은 목소리부터 여성같이 높은 목소리까지, 폭넓게 연기하는 이미지인데요.

특징이 없으니까 흔들림이 있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게 어떻게 제 색이 된 기분이 드네요.

 

―거기에 후쿠야마씨라고 하면, CLAMP선생님의 작품에 자주 출연하신 이미지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저 자신도 모르지만요. 역시 운명적인 거겠죠. 저에게 있어 xxxHoLiC은 정말 큰 작품으로 암굴왕과 더불어 터닝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암굴왕은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고, 이 기간동안 성장했다고 실감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반면, 사고방식을 포함해 당시의 저는 암굴왕이 기준이 되어버렸죠. 그래서 여러 곳에서 잘 못하게 되고, 동기부여도 되지 않았어요.

예를 들어 대본에 일본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 의견을 말해버렸죠. 제 대사가 아니더라도, 그냥 넘기지 않고 제 의견이나 질문이 있으면 했어요. 근데 그것도 정도가 지나치면 이상해져 버리잖아요. 그렇게 되면 " 너는 그저 읽기만 하면 된다고 " 라고 들을 정도가 되어버렸죠. 정말 그게 당연히 제가 틀린거라면, 계속 할 수 없겠다고 느꼈습니다. 어리니까 건방지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상한 것을 지적해서 혼나는 건 이상한 게 아닐까하고. 그러고나니 제 안에서 잘 못하게 되고, 한동안 슬럼프에 빠졌어요. 25살의 저는 " 되돌릴 수 있다면 여기가 찬스잖아 " 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대로 성우로서의 모티베이션이 닳아서 썩어가는 모습을 볼 바에야 깨끗하게 그만두는게 나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던 당시에 만났던 작품이 xxxHoLiC 이었습니다.

 

―정말로 그건, 커다란 작품이었네요.

xxxHoLiC에서는 캐스트나 스탭 여러분들과 함께 좋은 환경에서 만들 수 있었고, 제가 " 이 씬만큼은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 " 라는 생각으로 연기하면 음향감독님인 와카바야시 (카즈히로)씨가 " 네가 하고 싶은 것은 알겠어. 그러면 이렇게 하는게 좋아 " 라는 연출의 관점에서 제가 하고 싶은 방향으로 이끌어주셨어요. 생각했던 것밖에 할 수 없었던 출발점부터 암굴왕을 거쳐 연기 플랜에서 선택지가 나오고, xxxHoLiC에서는 그걸 읽어주는 사람이 나타났죠. 덕분에 저의 많은 잘못들을 깨닫게 되었고, 또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맞이한 30대. 공자로 말하면 " 서른이 되어 제대로 섰다" 즉 자립의 연대인데요. 여기부터는 거의 메인 캐릭터를 연기하셨지요.

하지만 저로서는, 그렇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했었어요.

 

―그렇게 인기가 있는데도요!?

즐거웠어요. 하지만 위기감이 강했었어요. 분명히 제가 나오기 시작한 때와, 바빠지기 시작한 때는 업계에서 세상에 내놓는 애니메이션의 수가 늘었어요. 디지털 기술이 일반화되고, 성우가 인터넷 보급에 의해 클로즈업되기도 했죠. 그 결과로 캐스팅으로 제가 선출된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구요.

 

―그건 어떤 이야기인가요?

전부는 아니지만, 작품에 따라 소거법으로 선정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 역할에 정말 제가 적합한것인가라는 그 판단을, 오디션에서 결정되었다고 해도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고 경우에 따라 선출되었다기 보다는 소거법으로 남은거겠지라고 냉정하게 생각했어요.

―그건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인가요, 아니면 네거티브 모드인가요?

네거티브는 아니예요. 우쭐해지는 건 쉽지만 어느 정도의 연령과 커리어가 되면 거친 단어를 듣지 않게 되요. 제 안에서는 냉정하게, 만약 10개의 작품에서 제가 필요한 것은 몇 개일것인지 제대로 알아야한다고 느꼈죠. 나머지는 모험이라는 선택지도 있었을거라 생각합니다. 기대해주시고 계신 안에서, 캐스팅된다고 해도 연기하는 측면에서는 도전의 모험이지요. 모험할 수 있게 해주신 부분은 정말로 감사한 행운입니다. 선출된 범위, 모험의 범위, 소거법의 범위. 저 스스로 어디에 배분되었는지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당시엔 엄청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후쿠야마씨의 대표작중 하나로 코드기어스의 루루슈가 떠오르네요. 가수가 한 곡이 잘 되면 그 노래만 바라게 되듯이, " 루루슈처럼요 " 라고 들은 적도 있으셨나요?

많이, 있었어요. 특히 방송이 끝났을 직후에는. 현장에 가면 " 루루슈로 부탁드려요 " 이런적도 많았구요.

 

―그건 언제까지 계속되었나요?

지금도 가끔 있어요. 저는 코드기어스가 끝나면, 이 라인은 더이상 없을거라 생각했거든요.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너무 다르고, 루루슈의 방법은 제 안에서 금지된 방법이기도 했구요

 

―어떤 방법인가요?

제가 쓰지 않는 목소리를 무리하게 써서 표현의 폭을 좁히는, 특히 제로(루루슈의 또 하나의 가면)와 관련해 대사를 만드는 방법도 형식에서 들어가는 방법이었죠. 그 방법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어렸던만큼 (연기 방식에서) 습관을 들이는 저 자신은 잘못된 길로 가는 것 같아서요. 그 연령에서 해야할 것은 아니었죠. 꾸밈없는 모습이 몸에 뿌리내려 그릇마저 바꿔버리는 거라면 해도 좋은 것일까, 생각하던 시기에 온 역이 루루슈였어요. 해내지 않으면 요구되는 것도 만들수 없으니까 그러면 있는 힘껏 발버둥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분명 루루슈의 목소리를 들었을 당시엔 놀랐었네요.

하게 된 이상, 승화시킬 수 밖에 없죠. " 목소리를 더 낮게 " 라고 들어서 속으로는 싫었지만, 그렇다고해도 요구받는 건 그거고, 하지 못한다면 제가 할 의미가 없죠. 그렇다면 제 기분이나 취향같은건 어찌되든 좋고, 현장에서 만들수밖에 없어요. 본의든 아니든 완성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완성된다면 분명 파생되는 매력도 나올거라고. 거기에 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스토리 전개를 잘 봐주신 덕분에 도움받은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곧 30대의 마지막을 맞이하시는데요. 어떤 10년이었나요?

엄청 즐겁게,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봐주신 30대였습니다. 저를 써서 즐거워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30대의 큰 전환점은?

암살교실과 청의 엑소시스트, 거기에 경계선상의 호라이즌, 그리고 배틀스피리츠, 파이브레인 신의 퍼즐. 암살교실 이외의 작품은 11년 방송이지만, 그 나이는 저에게 있어 엄청 컸어요. 제 안에서 제일, 다양한 것들이 좋은 밸런스였어요. 그리고 12년에는 여름눈 랑데부와 만남도 있었고. 이것도 해서 다행이었던 작품입니다. 프레스코(녹음을 먼저하고 그림을 그림) 수록으로, 등장인물이 적은 회화극을 긴밀하게 할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30대 후반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16년부터는 제 포지션이나 사고방식이 바뀌었어요. 10년경 기용해주셨던 분들과는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어떻게 달라졌나요?

소년 주인공은 거의 연기하지 않게 되었죠. 예를 들자면 시간의 지배자의 빅터 푸친은 겉으로 보기에 신체 연령은 어려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30대. 시간이 역행하고 있어서 젊어지고 있다는 설정이었어요. 그 외에도 살생님(암살교실) 같은 역을 연기하게 되고, 주인공을 맡게 된다면 어째서 저일까라는 이유가 필요했을까. 어른에 깔끔한 남성이 주인공이라면, 아마 아직 제 목소리로는 푹 빠지지 못하겠죠. 딱 맞는 분들이 많이 계시니까요. 제 경우에는, 지금 소년 주인공을 맡는다면 밸런스의 문제가 나오죠. 주인공이 제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가 제작측면에서 있다, 그게 아니라면 하지 않겠지라는 식으로요. 그걸로 좋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많은 분들이) 지탱하며 이끌어주시는 입장이었으니까, 이끌어가는 입장도 공부가 되었고 드디어 악역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큽니다. 악역, 엄청 하고 싶었어요. 13년의 쿠로코의 농구에서 하나미야 마코토라는 빌어먹을 놈(웃음)을 연기했었는데 정말 즐거웠어요. 양심의 가책이 없는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더할 나위없이 행복했습니다.

 

―악역이 그렇게 즐거우실줄은.

정말 즐거워요. 신인때부터 중견이 되는 과정에서 " 제대로 된 악역이 가능할 것 " 이 하나의 테마였거든요. 어렵더라구요 악역은. 정말 나쁘지 않으면 드라마가 시시해져버려요. 하지만 매회 등장하는 건 아니니까 백그라운드가 거의 그려지지 않죠. 그런 인물을 잘 연기하고, 작품에 잘 녹아내릴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게 데뷔 당시부터 생각했던 거였거든요. 말하는 방식이 나쁘긴한데, 저는 " 주인공은 즐겁습니다 " 라고 말해요. 그야 매회 등장하고 있고, 꼭 백그라운드도 그려지고, 꼭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신인일때는 저의 서툰 부분과 맡은 역할의 성장이 싱크로하면 성립하는 것도 많았습니다. 성장하는 게 신인의 일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자신이 거기 해당하는지 생각해보면, 물음표가 나와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은 눈 앞에 있는 일을 제대로 하고, 또 모험의 범위에서 " 후쿠야마 쥰에게 걸어보자 " 고 생각하실 수 있는 인물이 되고 싶어요.

 

―곧 맞이하는 " 불혹 " 의 40대. 어떤 세대가 되고 싶으신가요?

액년을 맞이해 힘들 것 같아요.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웃음)

 

―그게 무슨 희망인가요! (웃음)

재능이 없었던 인간이 여기까지 해 올 수 있었다는 자체가 정말로 감사한 일이니까요. 신인으로 들어와서, 사무소를 그만두면서 프리가 되고, 개인활동이나 아이돌 활동도 거의 안했고, 그다지 특징도 없는 목소리인데 여러가지 역을 연기하게 해주셨습니다. 비정상적으로 운이 좋았던 거겠죠. 앞으로도 성우라는 세계안에서 재미있는 인간 중 1명이 되면 좋겠어요. 업계의 측면에서 보면, 능력있는 신인이 지금보다 더 많이 나와서 " 성우는 대단하네 " 가 된다면 기쁘겠네요. 알려지지 않았던 성우의 강자가 더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많이 있거든요. 또 그런 세계가 되었을 때 " 장인 " 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Posted by @junjuninfobot